> 자료실 >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의 첫 희생물 > 해방 후 독도 관할
대구시보
해방 후 만 2년이 가까운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국의 강토는 남북으로 분할되고 이 땅의 동족들은 좌우로 분열되어 주권없는 백성들의 애달픈 비애가 가슴 깊이 사무치는 이즈음 영원히 잊지 못할 침략귀(侵略鬼) 강도 일본이 이 나라의 정세가 혼란한 틈을 타서 다시금 조국의 한 섬을 삼키려고 독아(毒牙)를 갈고 있다는 악랄한 소식 하나가 전해져 3천만 동포의 격분에 불 지르고 있다. 즉 간흉한 침략귀 일본이 마수를 뻗친 곳은 경북도내의 울릉도에서 동방 약49리(哩, 마일) 지점에 잇는 독도(獨島)란 섬으로서 이 섬은 좌도와 우도 두 개의 섬으로 나누어 있는데, 좌도는 주위 1리(哩) 반이며 우도는 주위 반리(哩)에 지나지 않는 무인 소도(小島)이기는 하나 해구(海狗), 해표(海虎), 어패(鰒貝), 감곽(甘藿) 등의 산지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이 우리의 도서를 해적 일본이 저희 본토에서 128리(哩)나 떨어져 있으면서도 뻔뻔스럽고도 주제넘게 저희네 섬이라고 하며 최근에는 시마네현(島根縣) 사카이항(境港)의 일인 모(某)가 제 어구로 소유하고 있는 모양으로 금년 4월 울릉도 어선 한 척이 독도 근해로 출어를 나갔던 바 이 어선을 보고 기총 소사를 감행한 일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 여기에 이 두 도서가 조국의 일부분인 유래를 조사해 보면 한말 당시 국정이 극도로 피폐한 틈을 타서 1906년(광무10) 음력 3월 4일 일인들이 이 도서를 삼키려고 시마네현으로부터 대표단이 울릉도에 교섭 온 일이 있었는데 당시 동 도사(島司)는 도 당국에 이 전말을 보고하는 동시 선처(善處)를 청탁해온 문서가 아직도 남아있으므로 본 도지사 최희송(崔熙松)씨는 이 증거 문헌과 실정을 19일 중앙 당국에 송달하여 국토의 촌토(寸土)라도 완전히 방위할 것과 이 독도의 소재를 널리 세계에 선포토록 요청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