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외교부 독도

자료실

한국의 아름다운섬 독도 pdf자료 다운받기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의 첫 희생물

홈 > 자료실 >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의 첫 희생물 > 해방 후 독도 관할

인쇄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밴드로 보내기 카카오톡 지인에게 알리기

서울신문

울릉도 보고전(鬱陵島報告展)을 열면서 : 홍종인, 『서울신문』 (1947.11.15)

〔원문〕

Original Text

〔역문〕

울릉도 보고전을 열면서 : 홍종인

10일부터 열리는 울릉도 보고전람회는 조선산악회가 지난여름 하기사업(夏期事業)으로 개최했던 학술조사대(學術調査隊)의 수확의 일부이다. 앞으로 각 반의 순전문적인 학술 보고자도 계획 중에 있거니와, 그보다 앞서서 대중적인 과학교과서로서 『울릉도』라는 소책자도 연말 혹은 연초에는 간행될 예정에 있다. 원래 우리 산악회의 학술조사사업은 크게는 교통통신이 극도로 편한 산악지대의 자연적 국토의 실태를 과학적으로 선명(鮮明)히 밝힐 것과 그런 지방 동포들의 생활 일반을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산악등반의 기술적 연마를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울릉도 학술조사가 가지는 임무는 그 중에서도 특출한 조건을 가지는 것이다. 원래 울릉도는 동서해(東西海)의 고도(孤島)로 교통통신은 매우 불편한 곳이어서 산업, 교육, 일반문화는 매우 보급되지 못한 곳이다. 식량이 부족하다는 기본적인 불리한 조건과 싸우면서 본토 동포의 관심은 물론 국가적 행정 시설 면에서도 이렇다 할 혜택을 못 입고 있는 가운데 자연과 싸우면서 도민 전체가 생활 그것만을 위하여 싸우는 곳이다. 그러면서도 강렬한 민족의식은 고도(孤島)를 수호하는 용자(勇者)의 모든 고초를 능히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울릉도민의 성스러운 생활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울릉도의 역사가 설명하는 바와 같이, 그 국토적 위치는 대단히 불안한 동해의 파도가운데 부침하고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 석기시대 이후로 본토와 깊은 관계를 가진 생활유적(生活遺跡)을 살필 수 있었다. 그러나 중간에는 왜인(倭人)의 침범도 있었고 러시아인이 넘본 일도 있었다. 그 때문에 무인도로 소속(所屬)조차 미상(未詳)할 만큼 버림을 받았던 때도 있었다.
이제 우리는 새 국가를 건설하면서 국토의 안전과 그 발전을 위하여 모든 기초조건을 밝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특히 국토는 영해(領海)의 동시 보유(保有)를 전제로 하면, 국토의 발전은 영해와 영해권을 확대하여 해상의 행동반경을 확대 확보하는 것이 절대조건이 되는 것이다. 동해의 어업이 우리 산업계에서 무진장의 보고(寶庫)라고 한다면, 울릉도는 유일무이(唯一無二)의 동해어업의 거점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지대는 어떤 곳이냐, 그곳의 동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 발전을 못하고 있다면 그 원인은 어디 있느냐, 행정당국의 국가적 조사나 연구시설을 필요로 한다면 거기에 앞설 것은 이에 대한 일반의 국민적 관심을 크게 환기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에 우리 학술조사대는 인문과학에 있어서 지리, 역사고고, 민속, 방언, 농업, 어업경제 등과 자연과학에서 있어서는 동물, 식물, 삼림, 지질, 광물, 의학 기타 산업관계 자료 등 보도반의 사진을 위시한 각반의 수집자료와 도서 등을 일반에게 전시 소개하려는 것이 본 전람회를 구성하는 내용이 될 것이다. 그 중에서도 무인고도로서 귀속(歸屬)이 문제화 되리라는 독도(獨島)의 전모도 드러나게 된다. 그리하여 화산분출 이래의 자연과 인문의 역사가 모든 각도에서 표현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 사업에 큰 긍지와 자신을 가지려는 것은 아니다. 미숙하고 부족한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학계의 중진이 각 부분에서 대거 동원되어 진지하게 탐구해온 자취만은 나타날 것을 확신한다. 모르기는 하거니와 각 부문의 전문 기술가, 학자들이 과학의 메쓰를 들고 공동작업을 한 업적을 보여주는 이러한 기회가 드문 것을 생각할 때, 본 보고전의 의의는 또한 새로운 것이 있을 것을 믿는다(끝).